프로덕트를 만들며 사용자 행동 로그를 들여다보던 시절, 세션 시간이 늘어난 주에는 회의 분위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사용했으니 제품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어떤 경험으로 채웠는지는 로그 하나로 알 수 없었다. 필요한 답을 찾지 못해 계속 질문한 사람과 원하는 일을 해내느라 오래 사용한 사람이 같은 숫자로 기록됐다.
AI 제품을 보면서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사용자가 대화를 오래 이어갔다면 무엇이 좋아진 것일까. 답변이 더 유용했는지, 이해가 깊어졌는지, 계속 고치느라 시간이 들었는지 구분해야 한다. 사용 시간은 경험의 길이를 알려주지만, 그 경험의 가치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경험은 관심에서 시작해 이해와 몰입을 거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 순서는 모든 사용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라기보다 제품을 평가하는 관점이다. 사람이 왜 사용을 시작하고, 무엇을 이해하며, 어떤 활동에 몰입하고, 끝내 무엇을 수행하게 되는지 각각 묻는 것이다.
관심은 맡길 일이 분명할 때 시작된다
첫 화면의 빈 입력창에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문구가 있다. 가능성은 많아 보인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용자가 처음부터 정해야 한다. 도구의 능력을 설명하는 것과 쓸 이유를 보여주는 것은 다르다.
가령 보고서 작성을 돕는 제품이라면 처음부터 모든 작업을 약속할 필요는 없다. 자료를 비교해 쟁점을 정리하는지, 초안을 작성하는지, 주장과 근거의 관계를 검토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맡길 범위를 수정하고 첫 결과를 확인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관심을 끄는 첫 경험은 실제로 해결할 일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 뒤의 경험도 같은 일과 연결되어야 한다. 시작할 때 약속한 문제 해결이 대화가 이어질수록 더 명확해지는가. 사용자가 기대한 결과에 가까워지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첫 화면의 매력과 제품의 가치가 일치한다.
이해에는 질문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관심을 갖고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제품의 판단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이해는 답변을 끝까지 읽었다는 뜻이 아니다. 왜 이 결론이 나왔는지 설명하고, 다른 조건을 적용하면 무엇이 달라질지 생각할 수 있는 상태다.
보고서의 계획을 예로 들면 조사 대상, 비교 기준, 잠정 결론을 구분해 보여줄 수 있다. 사용자가 비교 기준 하나를 수정하면 어떤 자료를 다시 봐야 하고 어느 결론이 달라지는지 확인하게 한다. 길게 작성된 계획을 읽는 것보다 특정 가정을 검토하는 일이 목적에 더 적합한 경우가 있다. 이해를 돕는 화면에는 질문할 대상과 수정할 항목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여기서 화면의 완성도를 주의해야 한다. 보기 좋은 도표와 단정적인 설명은 결론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가정과 대안, 불확실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용자가 제품의 판단을 더 정확히 이해하게 하는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집중이 이어지려면 진행을 이해해야 한다
에이전트가 작업하는 동안 사람은 기다린다.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면 처음 맡긴 조건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결과가 도착한 시점에 다시 맥락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든다. 그 부담이 크면 검토도 간단한 확인으로 끝나기 쉽다.
상태를 계속 출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어느 목표를 수행 중인지, 어떤 조건이 바뀌었는지, 다음에 사람이 판단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검토를 앞두고 있다면 기준을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잠시 다른 일을 했다면 돌아왔을 때 필요한 맥락을 짧게 제공하는 편이 좋다.
사람이 계속 화면을 지켜보도록 만들 이유는 없다. 자동화된 진행과 사람의 판단이 연결되도록 필요한 맥락을 적절한 시점에 제공해야 한다. 집중은 사용자의 시간을 계속 차지하는 방식보다, 맡긴 일의 목적과 현재 상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몰입은 수행 중인 활동에서 생긴다
몰입을 연구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명확한 목표, 즉각적인 피드백, 과제와 실력의 균형을 주요 조건으로 설명했다.1 집중이 현재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면, 몰입은 그 활동에 깊이 관여하면서 수행과 피드백이 이어지는 경험이다. 화면을 보는 시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이 상태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AI 제품에서는 사람이 실제로 어떤 활동을 수행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제시된 자료를 비교하고 결론의 조건을 수정하는 일, 여러 초안 중 목적에 맞는 것을 선택하고 이유를 정리하는 일에는 사람이 판단할 과제가 있다. 그 결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도 있다.
반대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화를 반복하는 상태에서는 목표도 피드백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 같은 요청을 다시 입력했는데 답변만 달라진다면 어떤 선택이 개선으로 이어졌는지 배우기 어렵다. 몰입을 설계하려면 사용자의 선택과 결과의 변화가 연결되어야 한다.
몰입 이후의 행동도 제품의 일부다
몰입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일 수 있다. 업무를 돕는 AI 제품을 평가할 때는 그 경험이 실제 목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봐야 한다. 보고서를 완성했다면 내용을 설명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학습했다면 비슷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다.
기술과 웰빙을 함께 다루는 METUX 모델은 화면에서의 참여뿐 아니라 기술이 활동과 삶에서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살핀다.2 이 관점에서 제품의 평가는 대화창이 닫힌 뒤에도 이어진다. 제품을 사용한 뒤 무엇을 이해하고 수행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이 목표를 위해 검토를 늘리는 데에도 비용이 있다. 19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AI 제안을 분석적으로 검토하게 하는 설계가 과의존을 줄였지만, 효과가 큰 조건을 참가자들이 덜 선호했다.3 그래서 중요한 선택을 확인할 시점과 필요한 검토량을 함께 정해야 한다. 이해를 돕는 경험도 실제 사용 과정에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경험의 가치를 확인하는 질문
세션 시간을 보던 그 회의로 돌아간다면 질문을 바꾸고 싶다. 오래 사용한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느 부분을 이해했고 다음에는 무엇을 더 잘 수행하게 되었는지 확인하자고 말하고 싶다. 사용 시간이 길어진 이유도 그 결과와 함께 살펴야 한다.
첫 경험에서 맡길 일이 분명해지고, 사용하는 동안 결과의 이유를 이해하며, 자신의 선택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확인하는 제품. 그 경험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면 사람은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이해에서 몰입으로 이어지는 AI 프로덕트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수행하도록 돕는 제품이어야 한다.
주(註)
[1] Mihaly Csikszentmihalyi,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1990. 출판사 도서 소개. 몰입의 조건에 관한 후속 정리는 Flow 2.0, 2025 참고. ↩
[2] Dorian Peters, Rafael A. Calvo, Richard M. Ryan, Designing for Motivation, Engagement and Wellbeing in Digital Experience, Frontiers in Psychology 9:797, 2018. METUX 모델은 동기·참여·웰빙을 여러 경험 수준에서 다룬다. ↩
[3] Zana Buçinca, Maja Barbara Malaya, Krzysztof Z. Gajos, To Trust or to Think, Proceedings of the ACM on Human-Computer Interaction 5, CSCW1, Article 188, 2021. 199명 실험에서 과의존 감소와 주관적 평가의 차이를 확인했다. ↩